커피 한 잔의 행복과 자판기 커피
최우성기자(커피해럴드신문 발행인/강원대학교 커피과학과)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커피를 배고파서 마시는 사람은 없다. 커피는 오히려 배고픔을 유발한다. 커피 안에 들어있는 ‘클로로겐산’이 소화를 촉진시켜 주기 때문이다. 커피는 대표적인 디저트이자 기호식품이다.
애호가들은 커피를 아침에도 마시고, 점심과 저녁에도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면 마신다. 하루 커피 세 잔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지만 그 이상 마시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베토벤은 아침 식사 때 커피를 즐겼는데, 한잔에 정확하게 원두 60알을 골라 갈아서 마셨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했는데, 하루에 5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들이 커피를 왜 마실까? 한 잔에 담기는 음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행복’이다. 커피가 6세기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에 의해서 발견된 이후 인종을 초월해 인류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만큼 쉽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 있을까?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돈으로 계산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준다.
‘현대 생리 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윌리엄 하비는 17세기 혈액 순환의 원리를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 그가 발견한 혈액 순환의 원리는 의학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도 대단한 커피 애호가였다고 하는데, 그가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변호사를 불러 커피콩을 내밀며 “이 자그마한 열매가 바로 나의 행복과 재치의 ‘원천’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바하의 ‘커피칸타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 커피의 기막힌 맛이여~. 그것은 천 번의 키스보다 멋지고 마스카트 술보다 더 달콤하다. 비록 혼례식은 못 올릴망정, 바깥 출입은 못할망정, 커피 만큼은 끊을 수가 없구나!”
커피는 행복이다. 이것은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커피가 주는 행복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는 영감과 지혜의 원천이기도 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커피 한 잔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에 끊을 수 없다면, 커피는 이미 거의 종교 수준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행복을 추구한다. 처절하게 행복을 추구해도 그토록 원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점점 삶이 고단하지만, 그래서 허무하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한 잔의 커피는 힘을 준다.
최근에는 커피 전문점들이 많아지고, 어디서나 저렴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커피자판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음식점에 가면 100원짜리 커피를 마실 수 있게 입구에 서비스 차원으로 마련해 놓은 자판기가 있을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과거에는 커피 자판기가 어디에나 있어서 피곤할 때면 언제나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 저녁에 공원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자판기에서 뽑은 달달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지고 행복이 찾아 온다.
공사현장에서 힘든 노동 속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며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잔은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행복’이고, 졸음을 이겨내려 택시를 세우고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 한잔은 운전기사에게는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는 ‘안전’이라는 이름의 ‘행복’이다.
삶을 행복으로 위로하는 커피는 어찌 보면 종교만큼 요긴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