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통해 따라가 보는 커피의 역사
최우성 교수(강원대학교 커피과학과)
종교와 커피
커피가 가장 대중적인 음료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커피가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는 도전과 응전이 언제나 존재했듯이, 커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다. 이번 글을 통해서 세계의 종교들이 어떻게 커피를 자기들의 음료로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에티오피아와 커피
커피를 입문 할 때에 제일 먼저 듣는 이야기가 ‘칼디(Kaldi)의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에 그런 느낌인데, 적당히 학설처럼 포장하고 있다. 오마르의 전설과 마호메트의 전설과 함께 ‘삼대 커피 기원설’이라고 배운다. 칼디의 전설은 17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동양학자 ‘파우스테 나이로니’가 쓴 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에티오피아의 목동인 ‘칼디’가 키우던 염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가서 보니 빨간 열매를 먹고 염소들이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 열매를 입에 넣고 씹어보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았고, 주변의 수도원에 열매를 가지고 갔는데 수도원장 스키아들리‘가 그가 가져온 열매의 진가를 알아버렸다. 이때부터 수도승들은 기도할 때 잠들지 않기 위해 이 열매를 먹었다고 한다,
기도와 커피
그 전설에 따르면, 그 수도원의 이름이 예멘의 쉐호데트(Schehodet)였다고 한다. ‘증언’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이슬람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수도사들은 졸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그것은 커피콩에 들어있는 마술과 같은 속성들 때문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피곤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져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밤 중 가장 잠이 쏟아지는 이쉐(Ische)라고 부르는 기도시간이 되면 그들은 커피를 나누어 마신 후에 기도했다.
쉐호데트 사원에서 수도사들이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것이 언제였는지는 확정짓기 어렵다. 하지만 의술에 밝은 아랍인으로 중세 스콜라시대의 유럽에서 ‘아비세나’라고 불렸던 ‘이븐-세나’가 서기 1000년 이미 커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는 당시에 커피를 ‘카베’가 아니라 ‘붕크(Bunc)라고 불렀다. 그는 의사로서 커피가 가진 효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포도주는 몸을 나른하게 하지만 커피는 생각을 두 배나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이미 아랍인들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부터 이야기가 꼬이고 있다. 수도원 이야기에서부터 이슬람의 전설과 겹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칼디‘가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이야기는 더 궁핍해진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도 없고 알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처럼 누군가 재미있게 풀어낸 ’커피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커피
커피에 관한 다른 또 다른 기원설이 있다. 오마르의 전설이다. 오마르는 무슬림의 지도자였는데, 도성에 도는 역병을 치료해 주다가 술탄의 딸도 치료해주었다. 하지만 도성에 오마르와 술탄의 딸과 관련된 소문이 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딸과의 관계를 의심한 술탄이 격노하여 오마르와 그의 일행을 추방했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쫓겨난 오마르가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다가 커피열매를 발견했다.
새들이 먹고 있는 빨간 열매를 그도 먹자 눈이 밝아지고 몸에 힘이 솟아났다고 한다. 때마침 도성에 다시 역병이 돌았고 그는 이 열매들을 가지고 도성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고쳐 주었는데 치료효과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술탄은 커피로 역병을 고쳐준 공로를 인정하고 오마르가 자기 딸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커피가 엮어준 로맨스인 셈이다.
사실 이 기원설도 원래의 이야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덧붙여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워낙 커피를 좋아했던 무슬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에 이야기를 붙여 커피의 전설을 지어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커피의 기원에 관한 종교적 논의(論議)
커피의 기원설에 본격적으로 종교적 해석을 내어놓은 사람이 있다. 국내 이슬람학자인 이희수 교수는 “일부 사람들이 커피의 고향을 에티오피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커피의 고향은 예멘이 맞다”고 말한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커피 원산지가 그리스도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한 예멘이라고 믿는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가 생사를 오갈 때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계시를 받아 커피열매를 따 먹고는 건강을 되찾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무슬림 사이에서는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이는 커피를 무슬림들이 사는 곳곳으로 퍼트리는 힘으로 작용해 커피는 순식간에 ‘이슬람의 음료’인 것처럼 됐다.
커피의 본향 에티오피아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커피가 유래한 곳으로 예멘보다 에티오피아를 첫 손가락에 꼽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이 같은 주장은 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아라비카(Arabica) 커피 유전자 추적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었다. 북극 노르웨이 령 스피츠베르겐 섬에 있는 세계종자저장소에 저장할 아라비카 커피의 원종을 찾기 위해 학자들이 에티오피아의 깊은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커피의 조상격인 야생 커피나무를 발견했다.
아라비카라는 말에는 아랍(Arab)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과학적인 유전자 연구를 통한 검증의 결과는 아라비아반도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를 향하고 있다.
최초의 커피 경작지 예멘
아랍인의 입장에서 조금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초로 발견을 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오랜 커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은 아라비아반도이기 때문이다. 최초로 야생의 커피나무를 농작물로 경작한 곳은 ‘예멘’이 맞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6세기 고대 에티오피아는 국력이 강해서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바왕국(지금의 예멘지역)을 식민통치하였는데, 그때 자기나라의 야생커피를 예멘지역에 옮겨 심었다고 하는 고대 에티오피아의 식민지설과, 1450년에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제말 에딘’에 의해 커피관목의 경작법과 음용법이 예멘에 전해졌다는 ‘커피 경작법’ 유래설이다.
하지만 어느 이야기도 예멘을 커피나무의 고향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멘의 토질과 기후가 커피경작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땅이 최고급 커피를 생산하는 명소로 찬사를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에덴동산과 커피나무
이 부분을 종교적 시각을 가지고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통 경전인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 신은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만들었고, 땅에는 각종 씨 맺는 채소와 나무가 자라났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한 후에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들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동산을 다스리게 위임했다.
에덴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기혼, 비혼, 힛데겔, 유브라데다. 그 중 ‘유브라데 강’은 지금의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다른 강인 기혼 강은 구스 온 땅에 두루 흐르고 있었는데, 그 곳은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에티오피아 지역이다. 구스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루어 에덴동산은 작은 지역을 의미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부터 아프리카 남부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구약성경의 구절을 추적해 봐도 커피나무의 고향이 예멘이라는 주장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구약성서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들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엘’로 이어지는 혈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태초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설령 그곳이 자신들의 텃밭인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기독교국가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고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 싶다.
포도주(Wine)와 커피(Coffee)
커피는 때때로 ‘이슬람의 포도주’라고 불렸다. 코란 중 ‘식탁’이란 표제를 달고 있는 장에 보면, 이슬람의 창시자인 모하메드는 포도주를 즐기는 취향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포도주는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포도주가 배척되었는데, 실제로 포도주 자체를 반대했다기보다 ‘성스러운 상태’, 즉 집중력이 방해받는 상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슬람이 등장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포도주에 대한 보호와 예찬이 사라졌다. 이슬람세력이 점령한 지중해 남부지역의 절반 정도에서 포도나무가 사라졌고,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신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사실 예멘 땅의 뜨거운 협곡에서 커피열매를 따고 이를 모아 쌓아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슬람세계에서 커피와 포도주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포도주는 거부되고, 그 자리에 커피가 자리 잡았다. 이슬람에 의해 기독교국가인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었을 때에 포도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피가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이슬람에서 포도주는 ‘잠’을 의미하고, 커피는 ‘깨어있음’을 의미했다. <천일야화>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결코 잠을 자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마실까?”
목숨 걸고 커피 마시기
부유한 사람들은 커피를 제대로 마시기 위해 집에 전용 커피 방을 따로 두기까지 했다.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카베 카네스(kaveh kanes)라는 커피하우스들이 드나들었다. 15세기 말에 순례자들을 통해 페르시아, 이집트, 터키, 북아프리카 같은 이슬람 지역에 커피가 소개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커피는 반대에 부딪쳤다.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서 빈둥거린다고 못마땅해 하는 통치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랄프 하톡스(Ralph Hatox)는 커피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에서 “커피하우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부적절한 오락에 빠져서 탈이다. 도박에 탐닉하는가 하면 난잡하고 이단적인 이성교제에 휘말리고 있다”고 고발했다.
메카의 젊은 통치자 카이르 베그(Khair Beg)는 자신을 조롱하는 풍자시들의 근원지를 커피하우스로 지목하고 커피를 코란에 위배되는 불법음료라고 규정했다. 1511년에 메카의 커피하우스들은 결국 강제 폐업을 당했다.
메카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핍박을 받았다. 금지된 기간에 커피를 마셨다가 당나귀에 거꾸로 태워져 묶인 채 채찍을 맞아야 했다. 또 부녀자들이 커피에 빠져 잠자리를 소홀히 하는 남편들을 고발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한편, 커피는 이슬람교 수도단체 데르비쉬 파의 수도승들에게서도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불 위에 얹어놓은 청동냄비에서 검은색 커피가 쉭쉭거리며 끓어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악마의 음료’라며 금지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들은 “심판의 날에 커피를 마시는 자들의 얼굴은 그들이 마신 저질 음료처럼 검게 될 것이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이처럼 광적인 행동은 커피를 즐겨마시던 카이로의 술탄이 금지령을 풀고 나서야 차분해졌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집트에서는 다시 커피금지령이 발령됐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금지했을 뿐 가정에서 허용할 정도로 전에 비해 강도가 약해졌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곧 목숨을 거는 일이었던 적도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수상 쿠프릴리(Kuprili)는 전쟁 중에 반정부 선동을 두려워하여 커피하우스를 폐업시켰다. 커피를 마시다 걸리면 가죽부대 안에 갇혀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에 던져지는 벌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까지 했어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자 결국 금지령이 철회되었다.
찬성도 반대도 근거가 되는 코란
그렇다면, 이슬람 사회에서 커피를 금지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가축’이라는 제목이 붙은 코란 6장의 기록 때문이다. “알라신이 아침을 열리게 했으며, 그는 휴식을 위해 밤을 만들고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태양과 달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전지전능한 자의 질서니라.”
이를 근거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했다면 수피교도들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모순에 부딪친다. 커피음용 금지조치는 사실 불만 세력의 봉기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봐야 한다. 커피는 지성을 자극하는 각성제요, 부작용이 없이 기운을 북돋아주는 효과로 사랑받았다. 커피하우스마다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사업을 도모했다. 합의와 시상(詩想), 사상을 고무시켜주는 공간이었다.
수많은 탄압 속에서도 커피의 생명력은 더욱 왕성하게 숨쉬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커피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양귀자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떠올렸다.
인류를 각성시키는 커피는 그 자체로 저항적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원초적 욕구를 분출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커피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권력보다 강하고, 어떤 면에서 종교보다 영향력이 있다”고…
유럽의 기독교와 커피
커피가 유럽으로 전파된 것은 1683년 ‘오스만 투르크’의 오스트리아 빈 공방전 때의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빈’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유럽 최초의 카페가 생겼다. 그러나 한 동안 사람들은 커피를 의약품의 일종으로만 알고 있고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커피는 작지만 조용히 유럽 기독교 문명을 흔드는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이슬람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기독교 문화가 수용하는 것에는 상당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며 사회에 혼란을 주는 술이 아닌 대안으로 커피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포도주와 맥주 소비 감소를 걱정한 유럽의 음료업자들은 커피가 '악마의 음료'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급기야 가톨릭 성직자들이 당시 교황인 클레멘스 8세(1536-1605)에게 커피 음용을 금지해달라고 청원하기 이르렀다.
그러자 교황은 우선 커피 맛을 보자고 하고, 커피를 마셔본 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악마의 음료라고 하는 게 맛있구나. 그럼 이 음료에 세례를 주어 회개시켜서 악마를 놀려주고 우리의 형제로 만들자"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유럽인들은 교황으로부터 세례 받은 커피를 맘 놓고 마셨고, 급속도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약간의 술은 종교적 감성을 일깨워 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술은 종교적 영성을 감퇴시키며 결국에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는 등 해로운 점이 많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서 지나친 음주를 경계하는 것은 술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력이 부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술과 마찬가지로 커피도 중독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커피의 중독성은 술에 비할 바가 아니며, 커피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아랍의 무슬림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기독교 문화가 수용하는 것에는 상당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며 사회에 혼란을 주는 술보다 나은, 대안으로 커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교와 커피
커피에 필적하는 음료에는 차(茶)가 있다. 종교의 영역에서 보면 차는 불교의 음료였다. 커피에도 ‘칼디’의 전설이 있듯이 차에도 달마의 전설이 있을 정도다.
전설에 의하면 달마가 면벽정진을 각오하며 절대로 잠을 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달마는 육체의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는데, 이에 화가 난 달마가 자기의 두 눈꺼풀을 잘라 땅에 버렸다. 그 곳에서 최초의 차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후에 그곳을 지나던 달마가 자라난 차 잎 두 장을 떼어 자기 눈 위에 붙였는데 그것이 눈꺼풀로 변했다고 한다. 찻잎이 눈꺼풀을 닮아서 생긴 전설이라고 생각되는데, 차의 전설 역시 종교와 관계가 있고, 이슬람에서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불교의 영역에서도 차를 대신하여 커피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커피를 전문가 수준으로 즐기는 목사님들이 많다. 그런데 한국 불교계에서도 이미 커피를 전문가 수준으로 즐기는 스님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커피를 즐기는 수준에서 직접 커피를 볶고 갈아서 마시는 스님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템플 스테이에서 스님들이 차를 내려서 손님들에게 대접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절에서 스님이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하니 커피의 힘이 새삼 놀랍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인들이 커피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은 커피가 지닌 향기와 카페인의 신비로운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싶다.
‘떼루아’(Terroir)와 종교
‘떼루아’란 와인에서 차용한 프랑스어로 ‘커피가 자라나는 거의 모든 환경’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품종의 커피나무를 심어도, 그 나무가 자라나는 흙의 질이나 공기, 바람, 습도 등의 기후나, 심지어 농부의 정성이나 실력이 커피의 맛과 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떼루아가 커피의 맛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종교도 마찬가지로 그 땅의 토양에 따라서 달라진다.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종교가 세계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토착세력의 영향을 수용하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에 따라 변질되기도 하고, 융합하기도 하며, 새롭게 재해석되기도 하였다.
불교가 전파된 중국이나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토착화 시도가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와는 많이 다른 불교가 각 지역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기독교도 전파되는 지역에서 토착화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사실 세계 종교들 치고 토착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종교가 있었던가?
커피가 처음 고향인 에티오피아를 떠나 예멘의 모카에 심겨졌을 때, 그 땅에서 독특한 예멘 모카커피가 재배될 수 있었다. 커피가 인도 땅에 순례자 ‘바바부단’에 의해 심겨졌을 때 그 땅에서 인도커피만의 독특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게 되었다.
커피의 품질이 ‘떼루아’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종교도 역시 그 땅의 ‘떼루아’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다른 환경, 다른 토양에 심겨진다고 해도 커피나무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맛이 재해석되어 더욱 풍부해지고 다양해진다. 이처럼 원래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핵심적인 진리와 가치는 변하지 않고, 그 땅의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와 영혼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종교는 마치 비가 온 후에 땅에서 풍겨오는 흙의 향기처럼,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