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 베트남 커피
베트남 다낭(Ðà Năng]과 호이안(Hội An)은 코로나 이전에 한국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었던 핫 한 여행지 중에 하나이다. 베트남식 쌀국수와 볶음밥이 입맛을 돋우고 달달한 유커피가 오감을 자극하는 나라, 베트남 커피를 살펴본다.
베트남은 우리나라 군대가 참전해 전투를 벌였던 나라로 이런 이유로 근세사(近世史)에 한국과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국군의 참전과 그로 인한 전쟁의 아픔도 상처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대한민국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도 않은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상처보다 현재의 이익을 중시하는 민족성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후 각종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결혼을 통해서 수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국내로 이주해 살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처녀들이 대한민국의 가정에 시집오는 것을 통해서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심리적으로 한층 가까워졌다. 양국 간 교역 규모도 해마다 커져서 2016년 기준 양국 간 교역 액은 451억 달러에 이르고, 2014년부터 대한민국은 베트남의 3대 교역국이자 제 1의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베트남의 커피가 우리나라 커피 애호가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다. 베트남은 자국의 대표적인 인스턴트 커피를 공격적으로 마케팅 하고 있으며 여기에 길들여진 커피 매니아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베트남은 100여 년의 커피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커피 생산이나 수출에 있어서 급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은 2016년 기준 세계 제 2의 커피의 생산국이며(2750만 포대, 전체 커피 생산의 생산량의 19.8%), 로부스타(Robusta) 커피의 최대 수출국이다. 이 나라는 커피 산업이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커피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인지 이 나라 어딜 가도 커피에 관한 한 자부심이 넘친다.
베트남의 커피 역사는 그들의 가슴 아픈 식민 역사와 뿌리를 같이 한다.
1771년 베트남 최초의 농민 반란 이후에 1778년 베트남 남부의 ‘응웬’ 가문과 북부의 제후 ‘쩐(鄭’)가 무너져 내렸다. 1792년 ‘응웬’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응웬 안’이 프랑스의 서구 식 군대의 힘으로 정적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를 열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왕권이 수립되자 자기에게 크게 도움을 준 프랑스 등 외국 세력에 대해 배려하지 않았으며, 다만 선교 활동만 허락해 주었다. 그는 서구의 문호를 받아들이는 일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민 망’황제는 더욱 노골적으로 폐쇄적인 정책을 폈는데 이는 선교사들의 추방 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출국하지 않고 농촌으로 스며들어 불만을 가진 농민들의 난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민 망’은 크게 노하여 1833년 10월 17일에 프랑스 선교사 ‘르 베랭 프랑수아 가를랭’을 처형했으며, 이어 개종한 베트남 신자들과 7명의 유럽 선교사들을 처형했다.
프랑스 군대가 이 일을 빌미로 1868년 ‘다낭’에 상륙하고 여러 요충지를 점령해 나가다가 1862년에는 사이공을, 1873년에는 남부 전 지역을 점령하여 식민지를 삼게 되었다. 베트남은 19세기 말부터 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약 6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 식민 통치 기간 프랑스인 신부가 베트남의 토양에 커피나무를 옮겨 심은 것인데, 커피 농사에 적합한 베트남의 ‘테루아’ 덕분에 베트남의 커피 농업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1위의 로부스타 커피 생산 및 수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 시절 심긴 커피나무가 이제는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반 산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베트남 커피는 생산 규모에 있어서 이미 세계제일의 커피 대국이지만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커피 산업은 경영 마인드와 기술, 세련미가 부족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필자가 베트남의 고도인 ‘호이안’에 갔을 때에, 커피의 나라 답게 그 작은 고성(古城)에 커피 전문점이 여러 곳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의 간판 중에는 팜 카페(Farm Cafe)라는 글씨와 로스팅 카페(Roasting Cafe)라는 글씨가 유독 많았는데, 그에 비해 커피 로스팅 기계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맛을 본 결과도 그리 좋진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계의 유명하다는 커피 산지 어딜 가 봐도 실력 있고 맛있는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베트남도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 커피 상품 중에 족제비 똥 커피인 위즐(weasel)커피는 나름 유명하다. 베트남을 다녀오는 관광객들마다 사오는 커피가 이 커피이다. 관광지 답게 커피 원두 판매점마다 위즐 커피를 대표 상품으로 진열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진 그 커피들은 진짜 ‘위즐커피’이기는 한 것인지, 언제 로스팅(Roasting)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커피 봉투에 쓰인 유통기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커피를 볶은 날 기준이 아니라, 봉투에 원두를 담는 날을 기준으로 하는 듯 보였다.
호이안(Hội An)의 커피 프렌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더니 점원이 두 개 사면, 하나 더 끼워준다고 권했다. 구입한 원두는 매우 가격이 비쌌다. 350g 한 봉지에 원화로 7천원쯤 했는데, 그 봉투 전면에 크고 자랑스럽게 이렇게 인쇄되어 있었다. “100% 로부스타 커피(Robusta Coffee)” 이 카페 직원들은 ’로부스타 커피’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베트남인들은 커피를 쓰고 탄 맛나게 볶는다. 쓴 맛이 특징인 로부스타를 더욱 쓴 맛나게 볶는 것이다. 이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듯 마시면 써서 마시기 어렵다. 그래서 베트남인들은 커피에 연유를 넣고 마신다. “카페 쓰어 다(Caphe Sua Da)” 는 연유를 넣은 아이스 밀크커피이다. 사계절이 더운 베트남에서 상하기 쉬운 우유 대신에 연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측 하건대 프렌치 프레스로 추출한 커피 용액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프랑스 식 커피 ‘카페오레“가 발전해서 ’카페 쓰어 다‘가 된 것은 아닐까? 이 연유 커피는 저어서 먹다 보면 연유 특유의 달달함 때문에 제법 맛이 있다. 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치고 올라오는 로부스타의 강한 쓴 맛이 오감을 찌르듯 자극한다. 마치 이것은 커피를 마시는 베트남인들에게 경제적인 성장의 달달함에 취해 역사를 잊지 말고 깨어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베트남 민족은, 과거 수 없는 외침을 받았으면서도 결코 어느 누구도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지는 못한 강한 민족이다. 그 까닭은 과거의 원한에 매어있지 않고 현재의 실리를 추구하지만 결코 과거를 잊지 않는 민족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베트남 커피 ’카페 쓰어 다‘에서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본다.
위 글은 동서식품 사보 '삶의 향기'에 일 년 간 연재 되었던 글 중의 하나입니다.
커피해럴드 신문












